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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권 전문가 칼럼>삶의 절대 가치기준은 탄소세인 시대

이창권 칼럼 | 기사입력 2024/10/15 [13:23]

<이창권 전문가 칼럼>삶의 절대 가치기준은 탄소세인 시대

이창권 칼럼 | 입력 : 2024/10/15 [13:23]

  이창권 소장

경기ESG운영위원, 

몽땅맑음생태환경학교장 © 대부신문


우리에게 가까운 영흥도에 소재한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더운 물로 인해 근해의 패류들이 죽어가는 영상이 뉴스에서 잇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넓은 대해에 불과 얼마되지않는 온배수가 무슨 영향이 있을 것인가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 영향은 어민들의 생활고를 가져와 실제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현실로 화젯꺼리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환경은 우리를 위협해 오는 새로운 전쟁의 도전인 것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적지않다.

 

쉬운 예가 바로 우리의 의식주에 관한 조건들이다.

 

그중에서 우리의 시대적인 부의 상징일 수 있는 고층의 아파트이다.

 

우리에게 편의와 경제력을 제공하는 아파트생활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협을 하는 탄소배출의 주범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러 여건들을 살피면 온실가스배출량 중의 31%가 고층아파트를 짓는데 쓰여지는 세멘트에서 배출된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기를 생산하는데 만들어지는 배출가스량 27%, 동식물을 기르는데서 배출되는 19%, 인간 삶의 운송수단인 비행기, 차, 배에서 품어내는 배출가스 16%, 냉난방의 배출가스 7%에 비해 얼마나 많은 양의 온실가스의 기폭공간을 우리가 선호하며 사는 지 아는 일이 필요하다.

 

 

필자가 거주하는 대부도에는 흔히 세컨하우스라는 전원주택을 지어 도시의 아파트숲을 피해 자연과의 더불어 삶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의 건강을 위해 또다른 공간을 지니고 색다른 삶의 취향을 가지려는 누구나 요망하는 삶의 한 형태이라 현대인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삶에는 사회적인 책임이 따른다.

 

곧 사회환경에 좋지않은 영향을 준 것에 대한 것 만큼을 세금으로 환산을 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탄소세(carbon tax)”라고 명명한다.

 

이는 지금의 삶의 형태와 정서와는 전혀 다른 이해원리여서 다시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적응과 이해가 필요하다.

 

아파트가 품어내는 탄소배출의 환경에 대한 책임, 그리고 이를 피해보려는 의식구조에 대해서 탄소세라는 도덕적인 잣대를 가지고 삶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전제인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 탄소배출이 얼마나 사회적인 악인지를 빌 게이츠가 쓰는 용어를 보면 아주 리얼하게 다가온다.

 

빌 게이츠는 전기에너지를 얘기하면서 화석연료로 만드는 전기에너지를 “더러운 에너지기술”이라고 표현하고, 신재생으로 생산하는 전기에너지를 “깨끗한 에너지기술”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 느낌이 온다.

 

 

그러나 지금의 라이프싸이클로 이들 둘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비용을 볼 때 더러운 에너지를 만드는 비용이 깨끗한 에너지를 만드는 비용보다 더 싸기 때문이다.

 

같은 품질의 것을 만들어내는데 싼게 더경제적이지 않은가? 만일 이런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더러운 에너지기술에는 환경에 끼치는 피해의 값을 더해야만 정상적인 에너지 값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깨끗한 에너지기술 가격엔 프리미엄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대조적이고 오히려 에너지생산가가 더 싸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는 이를 “그린 프리미엄”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삶의 패턴과 의식구조도 완전히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당장 대부도의 포도농사가 달라져야 하고, 집을 짓는 건축자재가 달라져야 하고, 도로포장재가 달라져야 하고, 화단의 식재하는 조경식물이 달라져야 한다.

 

모든 가치의 기준이 값의 차이가 아니라 탄소배출량의 지표와 관계가 있다는 것에 머물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집값도, 자동차 값도, 각 지방도시의 세금도 모두다 탄소세를 기준으로 하는 삶의 가치로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되는 때를 맞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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