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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읽기와 평설

홍승철 | 기사입력 2016/04/18 [09:49]

좋은 수필 읽기와 평설

홍승철 | 입력 : 2016/04/18 [09:49]

 

좋은 수필 읽기와 평설

▲     © 홍승철

 

    

    

문학평론가 한상렬

    

    

  강돈묵의 <들판의 소나무>는 이쯤하여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소나무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아래 ③~⑥ 단락이 그러하다.

    

  ③ 들판의 소나무는 혼자 서 있다. 그래서 더욱 나의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옆에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살아간다.

  ④ 산에 사는 소나무들이 개성 없이 친구들과 다정히 대화를 나눌 때, 들판의 소나무는 외로움을 이기는 연습도 하고 자신의 내면의 성숙을 꾀한다. 들판이 사계를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를 되씹는다. 산에 사는 소나무들이 개성 없이 친구들과 닮아가지만 들판의 소나무는 그렇지 않다. 소나무의 체신을 간직하려 노력한다. 혼자 체신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의 소나무들은 되는 대로 살아가도 옆의 친구들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들판에 홀로 선 소나무는 모든 것을 제 혼자 해결해야 한다.

  ⑤ 폭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고풍스런 자신의 자태를 간직해야 한다. 서로의 힘을 합해 견디어 내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혼자 이겨내야 한다. 설혹 산의 나무들이야 가지가 부러져도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들판에 홀로 선 소나무는 가지 하 나 부러지면 많은 이들에게 흉물로 드러난다.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많은 이들의 시선에 뜨이고 입에 오르내리기에 들판의 소나무는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기가 힘이 든다.

  ⑥ 고고한 정취는 그래도 들판의 소나무에서 맛볼 수 있다. 다른 것들과 똑같은 잎과 줄기를 가지고 자신의 모습을 꾸미더라도 들판의 소나무는 다른 모습이다. 균형 없이 주위의 나무들과 어울리는 숲정이의 소나무와도 다르고, 짧은 팔을 가지고 담합하는 무리진 소나무와도 다르다. 주위의 여건을 감안하여 가장 멋스럽고 고고한 모습을 간직한 채 소나무의 진수를 말하는 들판의 소나무, 그 가지 끝에 학(鶴)부부라도 앉으면 더없이 멋스러움을 자아내는 소나무, 아무리 홀로 있어 외롭다 하더라도 고독함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들판의 소나무, 이것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기에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날에도 내색함이 없이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런 소나무의 모습을 통해 화자는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또 다른 나무들과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소나무의 지혜를 배운다고도 했다. 이는 화자가 이 수필에서 구현하고자 한 주제 의식 즉 의미화의 단계라 하겠다. 즉 대상에서 받은 충격에서 출발하여 이를 의미화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결미의 다음 부분은 이 수필의 메시지라 하겠다.

    

  들판의 소나무 밑에 서면 진정 나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되씹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모습을 꿋꿋하게 간직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정 나의 갈 길이 무엇인가를 터득한다.

  벌써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산과 들은 많은 말씀을 가지고 나를 맞는다. 오늘따라 들판의 소나무가 대견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한 편의 수필은 이렇게 의미화의 과정이 명확해야 한다. 이런 의미의 구체화를 위해 지성을 바탕으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가 결합되어야 좋은 수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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