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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 가만히 있으라고요?

신현미 | 기사입력 2020/11/17 [18:27]

<아동문학> 가만히 있으라고요?

신현미 | 입력 : 2020/11/17 [18:27]

 

▲ 신현미 약력

 

아동문학가, 수필가, 서평가, 칼럼니스트, 문예교육지도교사

안산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청소년문학연구회,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동시집 <자전거 타고>, <이상한 엄마 구두>, 동화집 <햄스터 대소동>, 에세이집 <사랑한다는 그 일>, 서평집 <안산시민이 안산시민에게 권하다> 1,2,3권 공저 외 다수

 

 

비가 오네요. 소낙비 같습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학교에 간 진이와 유치원에 간 관이가 집에 올 시간이 되어 가는데 갑자기 비가 오자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우산 세 개를 챙겨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갑니다.

집 앞 유치원 버스가 늘 서는 곳에서 엄마는 관이를 기다립니다.

잠시 후 유치원 버스가 섭니다. 선생님과 관이가 함께 내립니다. 엄마를 본 관이가 울먹입니다. 그러더니 양손을 배꼽에 대고 고개를 숙여 공손히 인사합니다.

“어머니, 유치원 다녀왔습니다. 효도하겠습니다.”

늘 하는 유치원 인사법입니다.

그런데 관이가 계속 울먹이자 선생님이 무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저~~ 관이 어머니, 사실은 관이가 비가 오니까 창문 밖의 비를 만지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비를 만지는 것을 기사님께서 보시고 혼을 내셨어요. 그리고 내릴 때 꿀밤을 한 대 주셨어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관이가 놀랐나 봐요. 죄송합니다.”

기사님도 내렸습니다.

“꿀밤 한 대 살짝 준다는 것이…, 죄송합니다.”

엄마는 마음이 안 좋지만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선생님과 기사님이 다시 버스에 올라 출발할 때까지 그대로 기다려줍니다.

유치원 버스를 보내고 관이의 머리를 만져보니 혹이 솟았습니다. 엄마는 속상하지만 내색하지 않습니다.

“차 움직일 때 창문 여는 거 아니야. 그러다 사고 나. 그래서 기사님이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꿀밤 주신 거야. 알지? 차에서는 가만히 있는 거야.”

관이는 여전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합니다.

“다른 애들이 하기에 한 번 해본 건데 나만 혼났어요.”

엄마는 잘 압니다. 관이는 겁이 많아 먼저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해서 괜찮다 싶으면 따라 하는데 그때 눈에 띄어 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관이의 마음을 알지만 엄마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친구들이 한다고 다 따라 하면 안 돼.”

시계를 보던 엄마가 깜짝 놀랍니다.

“아 참! 진이 데리러 가야지. 관아, 얼른 가자. 누나도 우산 가져다줘야 하거든.”

관이를 집 현관 앞까지만 데려다주며 엄마는 말합니다.

“관아, 식탁 위에 빵이랑 우유 있어. 그거 먹으면서 가만히 있어. 엄마 얼른 누나 데리고 올게.”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관이랑 같이 가기엔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엄마 얼른 갔다 올게. 다른 건 만지지 말고 식탁에 앉아서 얌전히 빵만 먹고 있어야 해. 알았지?”

관이를 집으로 들여보낸 엄마는 서둘러 진이의 학교로 뛰어갑니다. 곧 진이가 끝날 시간이 되어 가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종례가 늦어집니다. 집에 혼자 있는 관이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별일 있을까 하며 다른 엄마들과 함께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사이 비는 그쳤습니다. 종례도 끝났습니다. 진이는 급한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게 친구들 물건까지 챙겨주며 아주 천천히 나옵니다.

“진이 엄마~ 진이 엄마~”

진이의 손을 잡고 서둘러 나오는데 엄마를 누군가 부릅니다. 이웃 소영이 엄마입니다. 진이는 소영이를 보더니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비도 그쳤는데 소영이랑 조금만 놀면서 갈게요. 네?”

“엄마, 나도 진이랑 놀면서 갈게요. 네?”

소영이 엄마와 진이 엄마는 서로 얼굴을 보더니 웃으며 동시에 대답합니다.

“알았어. 그럼 금방 따라와야 해.”

두 아이를 뒤로 하고 소영이 엄마와 이야기를 하며 가던 진이 엄마는 이야기에 푹 빠집니다. 건널목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아이들이 오자 그제야 아차 하며 급히 헤어져 집으로 향합니다.

문방구에 들러 색종이를 사온다는 진이를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현관문을 열다가 깜짝 놀랍니다. 매캐한 탄 냄새와 뿌연 연기가 집안을 가득 메웠기 때문입니다. 놀란 엄마는 급하게 관이를 부르며 주방 쪽으로 갑니다. 주방은 더 심각합니다. 냄비는 불에 타서 까맣고 계속 나오는 연기는 주방을 뿌옇게 흐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앞 식탁에서 관이가 가만히 의자에 앉아 빵을 먹고 있지 뭡니까?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가스레인지 불을 먼저 끕니다. 비 때문에 닫아두었던 창문도 모두 엽니다. 그리고 관이를 살핍니다.

“관아, 괜찮니? 아니 이렇게 연기가 가득한데 여기서 계속 빵을 먹고 있었어?”

“응. 엄마가 얌전히 앉아서 빵만 먹고 있으라고 해서 그러고 있었어요.”

“에구구. 관아. 이렇게 냄비가 다 타서 연기가 자욱한데 그 앞에 가만히 있으면 어쩌니? 가스 불을 먼저 껐어야지.”

“엄마가 전에 가스 불은 무서우니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뒤늦게 색종이를 사가지고 들어오던 진이도 깜짝 놀라 묻습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예요? 집에 불났어요?”

“응. 엄마가 가스 불에 국 냄비를 올려놓고 그냥 나갔나봐. 갑자기 비가 와서 너희 데리러 간다고 그만.”

“엄마도 참….”

“그러게나 말이다. 그나저나 관이가 큰일 날 뻔했지 뭐니.”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를 맞으며 진이와 관이는 낮에 있었던 일을 신나서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주방으로 갑니다. 그리고 가스 불 앞에 서서 가스 불을 켭니다.

“자~ 봐봐. 이렇게 하면 불이 켜져. 그리고 이렇게 하면 불이 줄고…, 그다음 이렇게 하면 불이 꺼지지.”

“뭐해요?”

빨래를 개던 엄마가 궁금해서 주방으로 가며 묻습니다.

“응. 우리 애들도 이제는 불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애들 불 잘못 만지면 괜히 사고만 날 텐데 뭐 하러 벌써 알려줘요.”

“아니야. 생각해 보니 기본적인 불 켜고 끄는 방법 정도는 알려줘야 할 거 같아. 오늘만 해도 관이가 알았으면 덜 위험했겠지?”

“그냥 내가 조심할게요. 괜히 가스 불 잘못 만지다 큰일 나요.”

아빠와 엄마의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진이가 불쑥 끼어듭니다.

“엄마, 아빠 말이 맞아요. 우리도 불 켜고 끄고는 알아야죠. 가만히만 있으라고 하면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내 친구 중에는 라면도 끓이고 달걀프라이도 하는 애들이 많은걸요.”

진이의 말에 라면이라면 자다가도 깨는 관이가 한마디 거듭니다.

“엄마, 나도 이제 불 사용하는 거 배울래요.”

“아니 그래도….”

엄마는 진이와 관이, 그리고 아빠의 간절한 표정에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 엄마가 생각이 짧았네. 불 사용법을 배워두면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대신 엄마랑 아빠 없을 때 혼자서 괜히 불 사용하고 그러면 안 된다.”

“네.”

관이의 마음을 읽은 듯 엄마는 다짐을 받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진이와 관이에게 가스 불을 켜고 끄는 법을 가르치며 내친김에 달걀프라이도 함께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차에서 창문 밖으로 손을 내미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도 설명합니다. 진이와 관이는 고개를 연신 끄덕입니다.

앞으로 진이와 관이가 배워가야 할 일들이 많겠죠? 다음에 엄마와 아빠는 또 무엇을 가르쳐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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