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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 욱이네 선인장

신현미 | 기사입력 2020/11/17 [19:07]

<아동문학> 욱이네 선인장

신현미 | 입력 : 2020/11/17 [19:07]

 

▲ 신현미 약력

 

아동문학가, 수필가, 서평가, 칼럼니스트, 문예교육지도교사

안산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청소년문학연구회,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동시집 <자전거 타고>, <이상한 엄마 구두>, 동화집 <햄스터 대소동>, 에세이집 <사랑한다는 그 일>, 서평집 <안산시민이 안산시민에게 권하다> 1,2,3권 공저 외 다수

 

 

욱이네 집에는 사랑초, 호접란, 금화산, 벤자민, 재스민, 미니소철 등 화초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취미로 가꾸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욱이도 자주 아버지를 도와드리다 보니 자연히 화초들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욱이 아버지께서 화분 하나를 들고 퇴근하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화분을 낚아채던 욱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아야!”

“왜 그러니?”

“따가워서요.”

“어디 보자. 가시에 찔렸구나. 조심하지.”

“이건 온통 가시투성이잖아요.”

“그래. 이건 선인장이거든.”

심통이 난 욱이는 처음 보는 선인장에게 한마디 합니다.

“너도 화초냐?”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욱이네 거실이 술렁거립니다.

“얘들아! 나와 봐.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어.”

보랏빛 사랑초가 먼저 나섭니다.

“그래. 쥐 죽은 듯 조용하네. 이제 우리 세상이다.”

은은한 향기를 내며 재스민도 기지개를 켭니다.

“근데, 얘들아! 요즘 욱이가 우리한테 좀 소홀해진 거 같지 않냐?”

사철 푸른 미니소철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합니다.

그때 보랏빛 잎을 흔들며 사뭇 거만한 목소리고 사랑초가 나섭니다.

“그게 다 며칠 전에 들어온 가시투성이 선인장 저 녀석 때문이지 뭐.”

“선인장이 왜?”

사랑초의 말을 알 수 없다는 듯 벤자민이 묻습니다.

“몰라서 묻니? 선인장 제가 우리 욱이 손에 가시를 박았잖아. 그러니 욱이가 선인장을 미워할 수밖에. 그 덕에 우리까지 관심 밖으로 밀려난 거지 뭐.”

“듣고 보니 그러네. 욱이가 변한 건 다 저 선인장 때문이야.”

“맞아, 맞아. 못생겨 가지고 정말 왕짜증이다.”

사랑초의 말에 화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듭니다.

듣고 있던 선인장은 정말 난처합니다.

“얘들아! 오해야.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

“됐거든. 변명은 필요 없거든. 아저씨가 뭘 보고 너 같은 앨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너 어디 가서 화초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까지 창피해지니까.”

자태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호접란과 금화산의 신랄한 공격에 선인장은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날 이후 선인장은 화초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와 욱이도 다른 화초들에게는 물을 자주 주며 들여다보지만 선인장에게는 간혹, 아주 간혹만 줍니다. 그래서 외로운 선인장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슬프거나 힘들 때 고향에 있을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현재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선인장이 나고 자란 곳은 사막입니다. 사막은 물 찾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매우 건조한 곳입니다. 낮에는 쨍쨍 내리쬐는 해를 가릴 수 없어 말도 못 하게 무덥지만, 밤에는 또 얼마나 추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모래바람은 또 어떻고요. 황사 바람보다 열 배, 아니 오십 배는 더 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번 모래바람이 불고 나면 온 세상이 눈에 쌓인 것처럼 모래에 싸여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지요. 그래서 사막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들도 살기가 거의 불가능한 그런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선인장은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만 생각하면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욱이네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난 집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아휴! 너무 조용하니까 이상하다. 얘들아, 나와 봐.”

사랑초가 숨을 크게 내쉬며 큰소리로 화초들을 부릅니다.

“왜 그러는데,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미니소철이 하품을 하며 말합니다.

“우리 저 선인장 골탕 먹이자. 쟨 아무리 놀려도 꿈쩍도 하지 않아서 정말 얄밉거든.”

예쁜 호접란이 심술궂게 말합니다.

“그럴까?”

마음이 맞은 화초들은 선인장만 빼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선인장 주위를 뱅뱅 돌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심지어 해를 못 보게 그늘로 밀어버리기도 하고 자신들의 축 늘어지거나 말라비틀어진 꽃잎을 선인장에게 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이런저런 방법으로 선인장을 괴롭히던 화초들이 조금씩 지쳐갑니다. 엿새째 날에 접어들자 이제 화초들은 목이 말라 아우성을 칩니다. 선인장만 멀쩡합니다. 그런 선인장을 보며 미니소철이 묻습니다.

“야~ 선인장, 우린 다 지쳤는데 넌 왜 안 지치지?”

선인장은 생각 같아선 대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나마 화초들 중에 자기를 덜 괴롭히려 했던 미니소철이 오랜만에 걸어온 말이라 성의껏 대답합니다.

“내 가시 때문이야. 우리 선인장들도 원래는 잎이 너희들처럼 넓었대. 그런데, 내가 살던 사막엔 먹을 물이 거의 없어서 자연히 물을 빨아들이는 잎을 줄일 수밖에 없었지. 계속 그렇게 잎을 줄이다 보니 이렇게 작은 가시가 된 거고. 그래서 지금 물을 먹지 않아도 너희들보다는 견디기 쉬운 거야.”

“그랬군. 나도 잎이 작은 편이라 다른 애들보다는 견딜만한 거구나.”

“그럴지도 몰라.”

화초들은 선인장과 미니소철의 얘기를 들으며 힘없이 눈만 껌뻑껌뻑합니다.

욱이네 가족은 일주일도 더 지나서 돌아왔습니다.

“아빠, 화초들이 시들었어요.”

“오랫동안 물을 못 먹어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아빠, 이리 와보세요. 선인장엔 꽃이 피었어요.”

“그래? 어디 보자꾸나.”

욱이의 말에 아버지는 얼른 선인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꽃들이 선인장의 가시 사이로 올망졸망 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예쁘구나.”

“네. 그런데 진짜 신기해요.”

“다른 화초들은 시들었는데 선인장은 시들지 않고 꽃까지 피웠으니 말이지?”

“네.”

아버지와 욱이는 한참을 그렇게 선인장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차! 하며 아버지가 손뼉을 치십니다.

“자자, 이러다 화초들 다 죽이겠다. 어서 물을 주자구나.”

시들어 축 처졌던 화초들이 물을 듬뿍 받자 하나둘씩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며칠이 지나자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슬그머니 일어난 화초들이 하나둘 선인장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선인장, 그동안 우리가 너한테 너무 심하게 군 거 같다. 미안해!”

“아니야. 다 지난 일인데 뭐.”

“그리고 우린 널 우리와 같은 화초로 인정해. 네 꽃은 정말 예뻐.”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난 너희들이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걸.”

“그래?”

하하호호 밤새 욱이네 거실은 이야기꽃이 알록달록 피었습니다. 화초들의 웃음소리는 거실창 너머 달님에게도 전달되어 달님은 더 환한 빛으로 화초들을 비추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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