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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미/수필가> 내 사랑 영아

신현미 | 기사입력 2021/07/22 [15:39]

<신현미/수필가> 내 사랑 영아

신현미 | 입력 : 2021/07/22 [15:39]

 

 

 ▲ 신현미 동화작가
아동문학가, 수필가, 서평가, 문예교육지도교사.
안산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아동청소년문학협회 회원, 한국
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동시집 「자전거 타고」, 「이상한 엄마구두」, 동화집 「햄스터 대소동」, 에세이집
「사랑한다는 그 일」 외 다수.
안산문협 표창패(2013), 안산시장 표창패(2015,2018), 안산문협 공로패(2019),
안산예총 예술대상 공로패(2019), 한국문협 표창장(2020)

 

안녕? 내 이름은 금순이야. 작고 귀여운 애완용 금붕어지. 난 요즘 매우 슬퍼. 이렇게 화창한 5월에 뭐가 그리 슬프냐고? 날씨가 좋다고 모두 행복한 건 아니잖아. 날 그렇게도 예뻐하며 아껴주던 내 사랑 영아네 식구들이 요즘 들어 나한테 너무 소홀해졌거든. 난 관심을 받지 못하면 오래 살 수가 없어. 하루 한 번 적당량의 밥을 먹어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물갈이를 해야 하고 또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아! 예뻐”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요즘 완전 찬밥 신세야. 이러다 난 아마도 오래 못 살 것 같아.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말이지. 내 슬픔은 그래도 참겠는데 내 사랑 영아가 슬퍼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는 거야. 영아는 초등학교 3학년이야. 영아네 식구들은 “영아는 참 똑똑해.”, “영아는 참 예뻐.”라고 말해. 정말 우리 영아는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검도도, 영어도 잘해. 상장을 열 개나 넘게 받아왔는걸. 그렇게 똑똑하고 예쁜 영아가 왜 슬프냐고? 글쎄. 그건 아마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아는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쪼르르 내게로 와 “금순아, 잘 잤니?” 하며 밥을 넣어 주었어. 그러곤 한참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다 학교에 갈 준비를 했지. 학교에 다녀와서는 가방을 맨 채 “할머니, 금순이 잘 있지?” 하며 내게 또 쪼르르 달려왔고.

 

영아네는 식구가 좀 많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엄마와 영아 이렇게 여섯 식구야. 모두 영아라면 어쩔 줄 모를 만큼 사랑하지. 그런데도 영아는 식구들보다 날 더 사랑하는 거 같아. 식구들이 “영아 넌 금순이만 예뻐하고.” 하며 질투를 하는 걸 보면 말이야. 그렇다고 다른 식구들이 날 미워하는 건 아니야. 영아만큼은 아니지만, 난 식구들의 사랑을 골고루 받아 늘 행복했지.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전까지는.

 

언제부턴가 영아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는 찬 기운이 돌았어. 서로 얘기를 안 하기 시작하더니 괜히 영아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딱딱하고 거친 말을 마구 쏟아 내더라고. 영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건 아마 그때부터일 거야. 나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게 점점 불안해

 

졌어. 그런 상황이 좀 오래 간 거 같아.

 

영아는 간혹 슬픈 얼굴로 내게 와서 “금순아, 넌 행복하니?” 했어. 그런데, 난 밥이 모자라 계속 힘이 없었고 더구나 물을 갈지 못해 숨쉬기가 점점 곤란해져서 애교를 떨며 영아를 위로해줄 수가 없었어. 그 뒤로도 영아는 몇 번 내게 이렇게 말했어.

 

“금순아! 5월은 가정의 달이라며 모두들 행복해 해. 그런데 나는

 

행복하지가 않아.”

 

“요즘 엄마와 할머니가 나를 싫어하는 거 같아. 귀찮대.”

 

“금순아! 친구들이 아빠랑 있는 걸 보면 부럽고 화가 나.”

 

참, 영아는 아빠가 안 계셔. 영아가 두 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휴, 불쌍한 것!”하며 얘기하는 것을 들었거든. 영아가 불쌍하다는 건지, 엄마가 불쌍하다는 건지는 몰라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주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 하셨어.

 

하늘이 너무 맑아 난생처음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날 오후에 드디어 일이 터졌어. 영아가 집을 나가 버렸지 뭐야. 식구들은 그것을 가출이라고 했어. 학교에 다녀온 영아가 무슨 일인지 엄마에게 한참을 혼난 후 엄마가 잠든 사이 쪽지를 써놓고 집을 나갔대.

 

엄마, 저 영아예요.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하지만 저 찾지 마세요.

 

- 영아 올림

 

엄마는 갑자기 바빠졌어. 경찰서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나갔다 들어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쌍꺼풀이 없어졌더라고. 그때 마침 할머니가 들어오셨어.

 

“너 왜 그러니?”

 

“영아가 집을 나갔어요.”

 

“무슨 소리야? 어디 보낸 게 아니고.”

 

“보내긴요.”

 

“아까 잠깐 들어왔을 때 영아는 안 보이고 넌 자고 있기에 영아 외삼촌이 와서 어디 데려 갔나 보다 했다.”

 

“쪽지 써놓고 나갔어요. 가방까지 가지고 나갔다고요.”

 

엄마가 내미는 쪽지를 본 할머니의 얼굴은 도화지처럼 하얘졌어.

 

“난 그것도 모르고……. 늙으면 죽어야 돼.”

 

“왜 그러세요?”

 

“나도 쪽지 봤다. 근데, 난 영아가 외삼촌이랑 어디 가면서 너한테만 쪽지 남긴 줄 알았지 뭐냐. 그래서 외손녀 키워줘 봤자 다 소용 없다고만 생각했지. ‘찾지 마세요.’ 이런 말을 왜 못 봤나 모르겠다. 에그.”

 

그러고는 그동안 사이가 안 좋아 말도 잘 안 하던 엄마와 할머니는 서로 “내 잘못이야!” 하더라고.

 

“내가 너한테 그런 소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지난 일인데요 뭐. 애 먼저 찾아야지요.”

 

엄마와 할머니는 문지방이 닳도록 집 안팎을 오가며 발만 동동 구르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전화를 기다리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숨 쉬는 게 힘들었어.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밖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조용하던 집안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어. 엄마는 잽싸게 수화기를 들었지.

 

“여보세요. ……네. 영아네 집 맞아요. ……네? 영아가 거기 있다고요?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니요. 애가 집을……, 네. 그러게요. 제가 지금 갈게요. 영아 어디 못 가게 꼭 데리고 있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영아가 어디에 있는지 안 엄마는 애타게 쳐다보고 있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어. 그리고 말했어.

 

“영아, 2학년 때 친구였던 진이네 집에 있대요.”

 

가방을 메고 엄마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내 사랑 영아의 표정은 묘했어.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침울해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난 몹시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워 혼났지. 엄마는 영아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어.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작은 흐느낌과 떨림이 전해져 오더라고.

 

그 날 밤 영아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어.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는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할아버지도 말이야. 영아는 자는지 보이지 않더라고. 난 배고픔도 잊고, 내 배설물로 탁해진 물 때문에 숨 쉬기조차 힘든 것도 잊은 채 식구들의 대화에 온 촉각을 곤두세웠지.

 

“영아가 오늘 가출을 했었다면서요?”

 

외숙모가 먼저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

 

“네.”

 

엄마는 짧게 대답했어.

 

“그 문제로 너희들하고 의논을 좀 할까 하고.”

 

할머니의 말에 모두 평소보다 주름이 더 깊게 파인 할머니의 얼굴을 주시했어.

 

“일전에 영아 삼촌이 영아를 키울 테니 영아 어미 새 출발 시키자고 했잖냐?”

 

“네. 그랬지요. 아직 저렇게 젊은데 혼자 애 키우며 평생 살 게 할 순 없잖아요. 새 출발 하도록 우리가 도와줘야죠. 마침 우린 애도 없으니 영아를 친딸 삼아 잘 키울 수 있어요. 지금도 친딸처럼 여기는데요 뭐.”

 

삼촌의 말에 모두 침묵 했어. 엄마만 끝 모를 눈물을 계속 흘렸지. 그때 할아버지가 나섰어.

 

“아니다. 안 그래도 내가 영아 어미한테 너의 의중을 비추고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싫다며 저렇게 버티다가 결국 영아 할미랑 사이만 나빠졌지 뭐냐. 그러다 일이 이렇게 된 거다. 영아가 할미랑 어미가 냉랭하게 대하니까 절 미워하는 줄 안 모양이야. 한참 아빠의 빈 자리도 신경 쓰일 나이고. 애가 너무 여물다보니 사춘기가 빨리 온 거 같다.”

 

“그러니까요, 아버지. 아빠의 빈자리를 제가 채워준다니까요.”

 

“그렇게 채워지는 게 꼭 옳은 거 같진 않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영아 어미나 영아를 위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영아 어미와 영아 의견에 따라야지.”

 

잠시 침묵이 흘렀어. 난 조마조마해서 간이 콩알만, 아니 좁쌀만 해졌지. 그때 엄마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어.

 

“저는 영아랑 살 거예요. 제가 새 출발을 하게 되더라도 영아 데리고 할 거니까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때 방문이 열리고 영아가 나왔어. 그러고는 식구들 앞에 당당히 서더라고. 또 그러고는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엄마, 정말 죄송해요. 다 들었어요. 모두 절 사랑하신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저도 엄마랑 살 거예요. 외삼촌도 좋고 외숙모도 정말 좋지만 전 엄마 없인 못 살아요. 그냥 엄마랑 살게 해주세요. 네?”

 

영아의 말에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어. 엄마는 영아를 꼭 안으며 목멘 소리로 말하더군.

 

“영아야! 아까도 말했지만, 엄만 절대 영아랑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우리 사랑하는 딸 영아랑 같이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알았지. 대신 약속해. 다신 집 안 나간다고.”

 

“안 나갈 거야. 절대. 약속해. 약속 한다구.”

 

영아와 엄마는 누가 떼어 놓을까봐 서로 꼭 부둥켜안은 채 그렇게 오래도록 있었어. 식구들은 그런 영아와 엄마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고.

 

나는 몹시 슬퍼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더 작아질 것만 같았어. 그렇지만 기뻤어. 내 사랑 영아의 눈물 속에서 행복함을 보았거든. 왠지 내일 아침에는 영아가 내게로 쪼르르 달려와 “금순아! 잘 잤니?” 하며 방긋 웃어줄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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