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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섭 컬럼> 아픔의 통곡소리

잔인한 고문으로 거짓자백 ⑩

김관섭 | 기사입력 2021/06/09 [13:51]

<김관섭 컬럼> 아픔의 통곡소리

잔인한 고문으로 거짓자백 ⑩

김관섭 | 입력 : 2021/06/09 [13:51]

 

 

 ▲ 김관섭
월남 귀순용사

 

월남 귀순용사 김관섭(86)옹께서 5년전인 2016년 “나는월남 귀순용사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그 자서전의 내용을“안산신문”에 연제한다

 

저는 귀순 후 간첩혐의를 받고 대성공사와 남산 중앙정보부를 오가며 가혹하고 잔인한 고문과 인권유린을 당하며 3년6개월의 생과 사를 오가는 악몽과 같은 수용기간을 보내고 결국 진실은 꼭 밝혀진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귀순자로 확인되어 40년간을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40년간 살아오면서 내가 간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안보일선에서 직접 뛰는 안보강사로 약4,000여회의 강연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국민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데 기여, 국민훈장을 두 번에 걸쳐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귀순자로 확인된 후 약 40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지만 간첩 혐의를 받고, 위장귀순자로 억울하게 고문 받은 사실들과 그 분노는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한으로 맺혀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제가 40년 동안 안보일선에서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때 고문 받던 생각만하면 국가가 원망스럽고, 고문하던 신문관들이 미웠으나 대한민국의 법도 모르고 고문이 너무 가혹하였기에, 혹시 괘씸죄에 걸려 또 당하지 않을까? 하는 잠재의식 때문에 감히 진정서를 낼 엄두도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제가 자유를 찾아 월남 귀순했는데 그때 왜 저에게 간첩혐의를 씌워서 그렇게 가혹하고 잔인한 고문을 했어야만 했는지 진상을 이제라도 알고 싶고, 제가 억울하게 고문 받았다는 진실을 규명하여 저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 한을 풀고 죽을 수 있다면.....

 

74.8.26. 귀순 후 대성공사(6073부대)에 도착하여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몸과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불안한 상태에서 합동신문을 받으면서 귀순동기와 경위 등을 솔직하게 진술하였습니다.

 

74.8.28. 오전에 대성공사에서 처음 저를 담당했던 신문관 권 보(당시 약40세)가 제가 있던 독방에 들어와 “오늘 김관섭이는 고문받는다.”라는 말을 하였을 때 저는 울면서 내가 왜 고문을 받아야 합니까? 다시 신문을 받게 해달라고 하자, 이 말에는 답변을 안 한 채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신문관 권 보는 방에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합동신문과정인 74.8.28일 저녁 7시경부터 ~ 다음날 오전 7시경까지 독방에 가둬놓고 중앙정보부 신문관 허 창 범(당시 약40세)와 중앙정보부 신문관 강 용 구(당시 약45세)가 경찰 1~2명과 함께 저를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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