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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꽃을 샘하는 바람 속, 오늘도 걷는 구두 한 켤레

유정희기자

안산저널 관리자 | 기사입력 2014/03/10 [18:21]

(수필)꽃을 샘하는 바람 속, 오늘도 걷는 구두 한 켤레

유정희기자

안산저널 관리자 | 입력 : 2014/03/10 [18:21]

매서운 바람이 옷깃사이로 스며드는 새벽 아침. 이제 학교가 아닌 직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새벽 한기에 몸을 움츠리고 신발을 신는 내 눈 안에 아버지의 구두가 없다. 설렘에서 익숙함으로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나를 부끄러워하며, 평생을 아침마다 이 한기에 움츠렸을 아버지 생각에 괜스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하철에 몸을 실어 나를 옮긴다. 금세 아버지의 구두를 잊고는 내 생활에 젖어든다.

 

 그리고 다시 퇴근길, 낮에 잠시 느꼈던 따뜻함은 어디로 가고 또 다시 추운 바람에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집으로 들이며 아버지의 구두를 발견한다. “아빠!” 하고 불러보지만 코고는 소리와 함께 집안의 따뜻함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내 기척에 잠이 깬 아버지는 식탁위에 만두를 가리키며 같이 먹자고 웃음을 보인다.
다이어트 한답시고 아침부터 물만 마신 오늘 하루를 뒤로하고, 드라마를 보며 아버지의 마음만큼 꽉 찬 속의 만두를 씹어 넘긴다. 오물오물 거리는 내 입이 재밌는지, 어릴 적부터 먹는 내 입을 보며 웃음 짓던 아버지께 마지막 하나 남은 만두를 양보하고 TV 채널을 돌리고 보니 어느새 내 앞에 놓인 만두와 저만치 물러난 아버지를 보며 괜히 더 꼭꼭 씹어 삼킨다.

 

아침부터 아버지의 구두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던 마음은 오후가 되니 눈 녹듯 스르르 없어지고 내 생각만 하던 게 미안해서 되지도 않는 애교를 떨어보려 옆에서 수다를 떠니 싫지 않은 듯 웃으며 몇 마디 맞장구 쳐주더니 당신 졸리다 며 어서 들어가 자라고 방으로 내 등을 떠민다. 오늘도 아버지는 투박하게 내 걱정만 한다.
일상의 반복, 일터의 고단함에 오늘도 바람 잘 날 없는 나뭇가지처럼 하루를 마친 아버지의 구두를 보며 빨리 꽃이 피는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아버지와 함께 운동화를 신고 꽃 구경, 나무 구경, 사람 구경하며 아버지의 구두에도 쉬는 날을 주어야지. 바람아 시샘 그만하고, 얼른 꽃을 피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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